안녕하세요.

연말이라 바쁘실 줄 알지만 답변 부탁 드립니다.

저번 주 8~9개월 만에 친정을 다녀왔습니다.

아무 일 없었습니다. 그냥 예전과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닥'이라 쓰이는 그 기분입니다.

올해 푸름이닷컴을 알고 4~5월쯤 독이 되는 부모란 책으로 9월 성장 코칭 다녀왔었습니다.

나를 인정하는 시간도 있었고 과거의 기분을 되새기는 시간도 있었고 어린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다가 그 기억 속 기분을 더듬고 안타깝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눈물을 가진 시간도 있었습니다. 허나 여전히 우는 것이 쪽팔리고 창피합니다. 내가 왜 울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는 나를 찢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지민(4살 딸)이에게 사사건건 행동의 제약을 가하는 엄마에게 "냅둬 좀!!"하는 대화가 엄마와 저의 대부분의 대화였습니다. 엄마는 "냅둬 좀" 이라는 말의 본질을 모릅니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때 그때 알려드려도 상황만 조금 달라지면 또 똑같은 대화의 반복을 겪어야 했습니다. 화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런 대화였을 뿐입니다.

엄마는 나를 한번도 인정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내 용돈으로 내 옷 한 벌 사는 것조차 인정의 언어를 보내준 적 없습니다. 제가 따뜻하게 안겨본 기억도 없습니다.

엄마와 전 근본적으로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입니다. 부모자식간의 맞는 않는 궁합이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엄마와 저의 사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빠와 전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지만 아빠는 친부모에게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꼬일대로 꼬인 그 마음으로 늘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니..아빠, 엄마, 저 모두가 가정불화의 원흉들이었습니다.

전 어른들의 추악함과 이중성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 어른들에게 엄마 아빠는 보호막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저에 대한 인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렸을 때 다른 나라로 일하러 가셔서 오랫동안 부재중이셨고 10년의 기간동안 백수로 계시면서 자신의 내적불행으로 가지게 된 분노를 가족에게 쏟아 부으셨습니다. 아빠는 지성적으로 우월했었으나 실패한 인생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아니 참지 않으셨습니다. (이 모습이..지금의 저 또한 그렇습니다. 탈 애착된 아이는 부모지향적이지도 또래 지향적이지도 않은 체 혼자 커서 어찌 어찌 버텨왔지만 고등학교 때 아빠의 부재로 인생의 내리막길로 끝없이 추락했습니다. 전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엄마들이 그래도 나의 직업을 부러워한다 위로하면 솔직히 구역질이 치밀어 오릅니다.)

지민이가 돌 지났을 때 쯤 이혼 하겠다는 엄마의 말에 속아(입 가벼운 여자인 걸 잠시 잊었었습니다.) 아빠와 대면을 했었습니다.(그땐 푸름이닷컴도 모르고 내적불행도 모를 때입니다.) 분노란...내 안에 악마의 목소리가 울리고 눈이 뒤짚이고 온몸이 굳어왔습니다. 손발은 간질환자처럼 떨려왔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빠는 창피하신지 모든 창문을 닫으셨고 거실에 쓰러져 떨고 있는 나만 남겨둔체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전 부모지향적이지도 또래지향적이지도 않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부부간의 불화로 아빠의 부재가 다시 왔던 고등학교 때 지독한 또래지향적인 성향을 가졌던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절친인 내 친구는 고등학교 때 내 모습을 언니문화에 휩쓸리지 않는 유유자적한 아이였다고 말합니다. 엄마가 저를 지배하게 된 고등학교시기에 얼굴에 피부 아토피가 왔습니다. 지금껏 피부아토피는 저를 괴롭힙니다.

스무살이 넘어서도 전 어른이 아닌 어른이었습니다. 어른의 말 따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말이 아닌 말 따위 하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본질도 모르고 어른의 말 따위를 그대로 자기의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전 우스웠습니다. 전 어른이 우스운 아이였습니다. 어른의 추악함과 이중성부터 보고 자란 전 허기지듯이 어른의 추악함과 이중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전 내내 선생들과의 불화를 조장했습니다. 저의 직감은 늘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두려움, 수치심을 먼저 보게 했고, 제 대응은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저의 직업 또한 늘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을 대면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규제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으로 나가 어른세상의 외로움, 고독감을 이겨낼 내면의 용기가 없어 휴직하고 있습니다. <양철북>을 읽고 세상에 나가 처절하게 다가오는 감정을 이기지 못할 걸 아는 오스카가 결국 자살을 택한 3부에선 눈물을 철철 쏟아냈었습니다. 저도 그러니까요. 무서워서 나가지 못하겠습니다. 예민하게 느껴지는 그런 감정들이 제게 온몸에 찍히듯 쏟아집니다. 저의 몸과 정신을 갉작갉작 갉아먹는 것 같습니다. 나를 그 지경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보입니다. 규제업무를 하다보면 외압의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목적을 위해 악을 쓰고 덤비는 존재도 있게 됩니다. 양쪽 모두..아니 주위에 뒷통수 칠지도 모를 상사, 동료 모두 다가 벌레보다 못한 존재 같습니다.

전 약함에 대한 수치심을 갖고 있습니다. 약한 인간을 보면 저의 내면을 보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이 싫었습니다. 에너지를 쏟아 트집을 잡고, 독을 쏘아댔습니다. 제 정신 에너지를 그런 곳에 투자한다는 것이 수치스러웠지만 저의 정신은 늘 그곳에 걸려있었습니다.

친정에서의 3일은 그저 그런 하루하루였습니다. 친정 다녀오기 일주일전 '천재가 될 수밖에..'책을 읽고 불쌍한 여자라서 보지 못했던 회피자로서의 엄마의 모습과 엄마가 제게 씌워준 거짓자아를 인식하고 전 마음이 후련해졌었습니다. 지민이와 책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지민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덜 힘들었고, 남편과 지민이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편해졌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좀 더 본질적인 책이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의 의식이란 늘 바닥을 깁니다. 바닥에서 본질이 너덜너덜해질 때가 파헤쳐봐야 속이 시원하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늘 바닥을 기는 저를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 제게 상처는 되지 않습니다.

여하튼 친정 다녀온 후 퇴행이 왔습니다. 하나하나 벗어냈다고 느끼며 편해졌던 감정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예전과 똑같아졌습니다. 육체적 허기도 집니다. 먹어도 배고프고..

'바닥'이라 부르는 그것이 맞다면..

바닥은 왜 오는 것입니까? 왜 바닥을 경험해야 합니까?

바닥에서 무엇을 느껴야 합니까? 무엇을 얻어야 합니까?

이런 상태도 언젠가 지나갈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것도 두렵습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어떡합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까? 또 예전과 똑같아지고 말아버리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감정이란 게 없습니다. 아니 예전부터 없었습니다.

당장 내일 부모님이 돌아가신데도 제가 눈물 한 방울 흘릴지 모르겠습니다.

아빠가 집안을 홀딱 뒤집어놔도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더래도 제게 인생에 둘도 없을 슬픔이 왔었을 때도 전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런 일상 중 하루하루였습니다. 9~10살 때부터 지금껏...

                                                                                                           [닉네임: 지민사랑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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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사랑가득님.

피를 토하는 글을 이제서야 읽습니다.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고 글을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란 게 없다는, 아니 예전부터 없었다는 문장이 가슴에 와 박힙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모든 감정을 차단하고 억압해야 했는지가 느껴지기에 제 가슴이 아파옵니다.

지금 쓴 글도 가슴으로 쓴 글은 아닙니다. 제게 글을 읽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글이지만 푸름아빠에 대한 분노가 느껴집니다. 저도 님이 거부하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 입니다.저는 님에게 권위를 세우지는 않습니다. 다만 님은 어릴 때 무의식에 만들어 놓은 세상을 보는 지도를 어른이 된 지금도 그대로 제게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님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인 분노, 두려움, 수치심등을 먼저 보고 있습니다. 사실 그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님의 자신 안에 있는 것 입니다.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출발은 부모님에게로부터 왔지만 그 감정을 선택 한 것은 님의 자유의지 입니다.어릴 때 너무나 고통스런 환경에서 그나마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 남기위해 자신의 의지로 순종의 방법을 선택 했지만, 자신의 고유함과 자유의지를 포기 했다는 수치심, 분노, 죄책감은 내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억압은 감지했기에 부모님에게 분노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를 억압한 것은 대면 할 수 없기에 그런 분노와 수치심을 남에게 돌립니다. 그래서 남의 것이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이지요.

인간의 약 함을 보면 자신의 약함을 보는 것과 같아 참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약함이 고통스럽다는 것은 수치심이 내면화 되었다는 의미 입니다.이 경우에는 다른 사람과 친밀감을 가질 수 없기에 극도로 외롭습니다. 인간에 대한 친밀감이란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 입니다.그럴 때 상대방은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경계하지 않지요. 수치심이 내면화 되었다는 것은 수치심의 갑옷을 입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어느 정도 다가와 자신의 수치스런 모습을 본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어 그 갑옷으로 다른 사람을 밀어 내지요.항상 남을 경계해야 하기에 쉽게 지치게 됩니다.

원래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인간이 약한 존재 임을 알게 해주는 감정입니다. 실수 할 수 있고 약하지만 그렇기에 서로가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감정 입니다. 우는 것이 수치스럽다면 우리가 인간이 아닌 신이 되려는 교만 입니다. 그리고 거짓이 내 안에 있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부인하면 우리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는 것이지요.

바닥을 쳤다는 것은 내면화 된 수치심을 깨고, 우리의 영혼이 우리보다 위대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순복하는 것입니다. 순복은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에게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무릎을 꿇는 것 입니다.우리가 지금 존재하는 것은 신의 존재적인 사랑이 있어야 가능 합니다.예수님이 " 내 뜻이 아닌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고 외치면서 돌아가신 것은 신에게 순복한 것이지요. 또한 성경에서 "영혼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 임이라"라고 말한 것은 내면화 된 수치심이 깨져 영혼이 가난해진 것을 말하는 것 입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 갈 것이 아닌가에 대한 두려움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번 자각이 일어나면 다시는 원상태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퇴행 없이 성장 없고 치유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성장이란 직선처럼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아는 현명해서 받아들일 만큼만 받아들입니다.

지금까지 오는 것도 고통을 감내 했기에 가능 했습니다. 님의 자아는 앞으로 감당해야 할 고통을 어렴풋이 짐작하기에 두려움의 문 앞에서 서성이는 것이 느껴집니다. 성장은 무엇을 얻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살아가는 것 입니다.성장을 재촉하지 마시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이세요. 자신을 사랑하는 훈련을 하세요. 온 우주는 오로지 님을 위해 존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