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좀 올리겠습니다.

1. 몰입과 확장

요즘 제 아이는 상상놀이에 빠져 있습니다. 인형놀이와 소꿉놀이 겸해서 놉니다. 두 돌 전 쯤 상상놀이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주로 제가 상대해주면서 놀지요.. 혼자서는 잘 안놉니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읽기와 상상놀이가 하루 일과인 것 같습니다. 저의 딸은 빈둥거리며 한가하게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거든요.. 책읽기가 많은 날이 있고 상상놀이가 많은 날이 있고.. 중간 중간 짧게 찰흙놀이나 무언가 만들기 놀이 등 입니다.

이것들의 중심이 되는 대상은 일 년 이상 빠져있는 고양이입니다. 제 딸은 아주 흥분되는 감탄사나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양이"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본인을 고양이인양 생각하기도 하고 고양이가 나오는 책은 무조건 보고 고양이가 악역이거나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보면 스토리를 바꾸라고 하거나 고양이를 괴롭히는 등장인물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근래에 쥐돌이 시리즈 책에 빠져있을 때는 심술쟁이 고양이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화를 내고 '착한 심술쟁이 고양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다니기도 했답니다.

저는 고양이 책도 많이 사주었고 고양이 수십 마리를 실컷 만져볼 수 있는 고양이 카페에도 데려가고.. 고양이가 까칠한 혀로 핥아주었을 때 제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해주고 있는 것이 이정도입니다. 고양이 도감이라는 책을 사주어 고양이에 대한 기본 지식을 조금 알고 있긴 하지만 그 책을 달달 외우진 않습니다. 제 아이는 백과를 잘 안 보더라구요.. 제가 활용을 잘 못해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보여주면 보지만 찾지는 않습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아이들이 몰입을 하면 지식이 확장된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공룡에 빠지면 연대별로 공룡을 줄줄 외우고 공룡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다 알고 싶어 한다든지 우주에 빠지면 행성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제가 닷컴에서 본 몰입하는 아이들의 특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는 고양이를 그저 좋아할 뿐 고양이의 종류를 줄줄 외운다든지 하는 사전적인 지식은 크게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것도 몰입으로 볼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고양이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접할 수 있게 해주면서 확장을 도와야 하는 건지요..

2. 영어

제 아이는 한글은 일찍 떼었습니다. 22개월경 스스로 글을 읽겠다고 하였고 그 후로 다 읽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영문에 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뭐라고 써있는 거냐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묻는 것만 가르쳐줬을 뿐 한글을 가르쳐줄 때처럼 이름카드를 만들거나 일부러 짚어가며 읽어주거나 하지 않았답니다. 그 이유는 영어듣기나 사물을 인지하는 정도로 보아 글을 먼저 배울 때가 아니라는 저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영어를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어제목만 보고 책을 꺼내오는 아이를 보고 좋아하는 책 몇 권 알고 있겠거니.. 했는데 요즘은 제법 단어를 보고 첫소리를 비슷하게 읽습니다. 통으로 외운 단어도 많아 보이고 발음만 듣고 영어단어를 찾습니다. 이런 아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물어볼 때 적극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 옳은 일이었나.. 하는 것입니다. 저의 무의식에서 아이의 몰입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로 인해 아이의 발달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1번과  같은 맥락의 질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테스트하는 것 같은 질문엔 일체 대답하지 않고 알고 있어도 본인이 대답하지 않고 제가 정답을 말하도록 유도하는 아이.. 그래서 뭔가 가르치려는 느낌으로 다가가기 너무나 어려운 아이입니다. 그저 100% 놀이로 받아들이겠다 싶을 때 조금씩 던져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스스로 성장해가는 아이를 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아이의 눈빛을 따라가는 것,, 그것조차 힘들게 느껴집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3. 잠자기

좀 부끄러운 질문인데요. 제 딸은 정말 잠이 없는 것 같습니다. 평균 15시간을 깨어있습니다. 낮잠을 좀 많이 잔 날은 하루 중 18시간동안 노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구요. 낮잠 2시간 자고 20시간을 놀아재낀 날도 있습니다. 너무나 불규칙한 패턴이지요.. 제 경험상 잠을 불규칙하게 자는 것이 아이의 건강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확신은 있습니다. 제 아이는 아주 건강한 체력과 면역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문제는 저입니다. 항상 '엄마가 좀 피곤해서..', '힘들어서 조금만 쉴 께..'등등.. 반항기인데다가 혼자 놀지 않는 제 아이는 이런 얘기들을 너무나 싫어합니다. 제가 눈이라도 감으면 울어버립니다. 그런데 저는 감당이 안 됩니다. 잠자는 시간을 무조건 받아준 것..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온 느낌.. 입니다. 항상 피곤해하는 엄마의 모습.. 아이에게 어떤 것일까요.. 혹시 아이의 마음에 좋지 않은 내면아이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의 문제가 아닌 저의 부족함으로 인한 질문들이네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머리가 나빠서인지 어느 날은 다시 원점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저의 내적인 문제들은 뒤로하고 임시방편으로 모면하고 싶은 생각에 질문을 올리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래도..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닉네임: 쎄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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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미형님.

글을 읽으면서 "착한 심술쟁이 고양이"라는 아이의 말이 무척이나 흥미롭네요. 이 말은 아이가 이미 역설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역설은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사고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다면 역설은 말도 안 됩니다. 역설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교육은 어렵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지식은 그 자리에 있다는 염려를 하셨는데 잘 관찰해 보세요. 고양이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고양이가 어떻게 다양해지는지, 어떻게 풍요롭고 깊어지는지를 살펴보세요. 단지 글만 읽는 저도 아이가 상황을 고양이로 표현한다는 것을 보고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데, 아이와 함께하는 엄마는 글로 다 쓸 수 없는 상황을 보면서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아이의 행동이 신비롭지 않다면 엄마는 하나의 특정한 사고에 집착하는지를 보셔야 합니다. 모든 아이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 합니다.

1번 질문과 2번 질문은 같은 질문이라는 것을 이미 어머님은 알고 계시네요. 아이가 엄마의 통제를 벗어나는 두려움에 관한 질문 입니다. 100퍼센트 놀이로 가는 아이라면 100 퍼센트 놀이로 가세요. 놀이는 원더풀 아이가 발현하는 방식이며,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푸름이교육법에서는 그렇게 놀이를 강조 합니다. 배려깊은 사랑 안에는 공감, 경청, 함께 노는 것, 판단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과 같은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아이에게 전념하면서 아이와 함께 그 순간을 즐기는 것 입니다.

글안의 어느 구절에도 어머님은 분노를 표현하지 않았지만 저는 어머님이 분노를 억압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어머님의 내면 아이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넘어가는 사랑을 달라고 요구하는 아이가 힘겹습니다. 엄마가 피곤한 것은 몸이 피곤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분노를 억압하는데 쓰는 에너지가 크기에 마음이 피곤한 것은 아닌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와 놀 때는 진심을 다해 놀아주고 너무 피곤하여 견딜 수 없으면 엄마의 욕구를 당당히 아이에게 말하세요. 그리고 푹 자세요. 엄마가 잠자는 것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는 과정 입니다.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엄마가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아이에게는 죄책감의 근원이 자기라는 수치심을 주게 됩니다.

분노를 표현하지 못한 사람은 분노를 죄책감으로 바꾸어 과도한 죄책감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그래서 죄책감을 자신을 향한 위장된 분노라고도 합니다.

원더풀 아이의 특징은 활력 입니다. 20시간을 줄기차게 논다는 것은 그만큼 원더풀 아이가 손상되지 않았다는 의미 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존재로 사랑해주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그동안 아이가 잘 자라 아이의 내면의 빛이 강합니다. 그 빛은 엄마의 그림자를 드러내기도 하지요.

어머님은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만 가슴으로 내려오는 시간을 필요로 하네요. 원점은 이전의 원점은 아닙니다. 앞으로 가기 위한 준비과정 이지요. 치열하게 도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