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 아버님.
큰 아이 낳고 백일쯤 제 인생관. 세계관을 바꾸셨고, 모르던 걸 알게 해주셨지요.
휴직을 하게 되고, 시골로 이사도 하게 되었구요.
처음 만났을 때, 떨면서 제 소개를 하던 때가 생생합니다.
두 번째 뵈었을 때는 자존감이 낮네요. 라고 말씀 하셨었고, 그때부터 저를 돌아보게 되었지요. 세 번째 뵈었을 때는 가족캠프에서 즐거운 한때 보내시는 모습 멀리서 뵈었구요.
큰딸 40개월 작은딸 7개월 엄마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부모님과 대면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전화통화를 하다, 내적불행을 알며 몇 년을 끊이던 감정들을 두서없이 공격적으로 뱉어냈고, 엄마와는 소리 지르고 싸우고, 아빠에게는 통곡하며 얘기했었어요.
지금 전 두 아이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제일 어려울 때, 하필이면 제일 힘들 때, 이렇게 일이 벌어져, 전 감정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아이들은 차라리 자는 시간이 나을 겁니다.
부모님은 제게 전화를 했지만, 받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티비만 멍하니 보면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이들에게 공격하고, 남편에게 공격하고 오늘 동생 통해서 다음주에 올라오신다고 하는데 전 뵙고 싶지 않습니다.
일단 제 모든 얘기를 얼굴보고 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울음이 나와서도 말을 못할게 뻔하고 부모님이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전하고 덮으려고 하는 게 싫고 자기 방어, 변명만 하는 것 듣고 싶지 않고, 상쇄시키려고 절 인신공격하는 것도 듣기 싫고
저도 무섭고 두렵고..
하루하루 아이들은 저의 공격에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다치고 있습니다.
정말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가 않아요.
둘째는 그나마 7개월이니 젖만 주고 이유식만 주면 큰 괴로움은 없는데
큰 아이는 정말 절 핑 돌게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결국 제 얘기를 전달하고, 부모님께 사과든 변명이든 얘기를 듣고,
그래야지만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부모님과도 지낼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제대로 클 수 있을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사실 전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고, 아직은 제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많이 화가 나있는 상태인데 부모님이 제가 전화도 안 받고 안 만나려고 하면
힘들어하시지 않을까? 약간의 걱정. 그리고 날 내치면 어떡하지? 라는 엄청난 두려움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쓸까요? 등기로 보낼까요? 도와주십시요.
[닉네임: 하연하은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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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하은마미님.
두렵지요?. 또 다시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제게도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저도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두려워 미칠 것 같은 시간, 다시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 시간이 제 인생의 전환점 이었습니다.
저는 님의 두려움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모든 것이 마비되고 무력해지고 엉망이 된 것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어떻게 변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무너질 때는 어디가 끝인지 알지 못하지요. 모든 것이 어둠이지요. 빛이라고는 없습니다. 절망만이 남아 있습니다.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온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느끼지는 못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닥을 치면 반듯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야 새롭게 태어 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려면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밖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두려움도 나의 한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시 버림받을 것을 각오하고 부모님과 대면해야 합니다. 그것이 용기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부모님과의 대면을 회피 한다면 그 분노는 결국 아이에게로 갈 것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평생 부모님을 용서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모님과의 대면의 결과가 어떠하든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부모님이 진심으로 사과를 하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척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부모님이 사과 하지 않아도 님은 부모님에 대한 우상화를 깨고 고유한 존재로 독립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아이가 아닙니다. 어른입니다. 두려움은 내면 아이로부터 오는 것 입니다.
울던 말을 못하던 님의 이야기를 하세요. 님의 감정을 이야기 하고 논쟁을 하지는 마세요.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님이 받고 싶었던 사랑을 말하세요. 부모님과 싸우기 위해,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 위해 대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은 자신의 것임을 알기 위해 대면하는 것 입니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종속된 어린 아이가 아니라 당당한 어른으로 독립하기 위해 대면하는 것 입니다.
먼저 글을 써서 감정을 정리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더 이상 도망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님은 두 아이의 엄마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