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프로그램 다시 만들기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 치유 -

나에게는 유사자폐증상을 보이는 지적장애 3급인 언니, 

그리고 나와 단 18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남동생이 있다. 

아빠는 내가 두 돌이 되기 전에 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집으로 가시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에서 알려준 약과 주사기를 구입해 

아빠에게 직접 주사를 놓으시며 간호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망 없다는 말을 들었던 아빠는 

엄마의 정성으로 좋아졌다 다시 쓰러지시기를 반복했었다. 

아빠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아빠는 늘 아프셨고 자주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곤 했다. 

돌아가시지 직전엔 신부전증이라는 합병증까지 생겨 

온 가족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참 많이 힘들었었다. 

내 어린 시절은 늘 살얼음판 같았다. 

생각해보면 마음 편하게 안정감을 느껴 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어린 나는 늘 불안했다. 

내가 꼬마였던 시절 아빠가 쓰러져 회사를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어 

우리는 할머니와 미혼이었던 삼촌이 살고 있던 성북동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집 앞 골목 맞은 면에 작은 문방구를 시작하셨다. 

할머니와 삼촌은 둘 다 알코올 중독이었다. 

삼촌은 늘 방에서 술을 먹었고 항상 취해 있었다. 

할머니가 소주를 마시는 날은 지독히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엄마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며 욕을 했다. 

내 아들이 결혼을 잘 못해서 우리는 늘 재수가 없고 

며느리가 잘 못 들어와 이렇게 불행하게 산다는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할머니의 주정이 시작되면 우리 셋은 늘 방문을 걸어 잠그곤 했는데 

할머니는 촛대나 빗자루 등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이라면 들고서 

문을 두드렸고 모두 내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엄마와 아빠는 저녁때까지 늘 문방구에 있었는데 

할머니의 주정이 시작될 때마다 우리는 항상 방안에 갇혀 있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삼촌은 알코올 중독이 심해질 때마다 병원에 입원하곤 했었는데 

그 때 삼촌을 태우러 온 구급차가 집 앞에 서 있을 때면 

나는 그게 너무도 창피했었다. 삼촌을 태우고 떠나는 구급차를 바라보며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나는 왜 하필 이런 가정에 태어났을까?..."  그리고 

"왜 하필 이렇게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을까?"

"왜 나는 장애를 가진 언니의 동생이 되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삶을 돌려 다른 삶으로 가고 싶었다. 

돈이 많은 부모님에게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나는 아무런 힘도 없었고 나에게 주어진 운명은 이미 이렇게 정해졌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자아상은 점점 굳어져 갔다. 

할머니와 엄마의 불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작은아빠와 고모들은 그 집을 팔기로 했다. 

집을 팔고 삼촌과 할머니가 살 집을 부천 쪽에 얻었다. 

문방구가 있던 터에 부모님은 대출을 받아 4층 집을 짓기 시작하셨는데 

엄마는 돈이 부족해서 쩔쩔맸다. 

아빠가 합병증으로 신부전증이라는 병까지 얻게 된 후부터 

엄마가 늘 이웃에게 돈을 빌리는 모습을 봤다. 

그 당시에 아빠는 일주일에 2-3번 신장투석을 받으러 

대학병원에 가야 했는데 한번 갈 때 마다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대출받아 지었던 4층집은 층별마다 세를 주었지만 아빠 병원비로 

너무 많은 돈이 나가니 빚은 점점 늘고 있었다. 

아빠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슬픔보다 

어린 마음에 이제 병원비를 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엄마의 경제적인 부담을 나도 고스란히 안고 있었던 셈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문방구 자리에 식당을 차리셨다. 

경험이라곤 전혀 없던 엄마가 시작한 식당은 파리만 날릴 뿐이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텅 빈 가게를 엄마 혼자 앉아 지키고 있었다. 

수입은 거의 없었고 은행에 이웃에게 진 빚은 눈덩이처럼 엄청나게 불어났다. 

엄마는 "없다, 없다" 에 집중하며 항상 돈 걱정을 했고 

우리는 가난한 집,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가정이라는 신념을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나는 엄마의 그 반복되는 패턴을 무의식에 고스란히 학습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엄마의 정서적 경제적 부담을 함께 나눠 가졌다. 

언니가 장애를 가졌기에 엄마와 가장역할을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맡았다.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수입으로 

집의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도 많이 힘들었지만 

내 20대 시절은 참으로 우울하고 힘든 시기였다. 

집안 사정은 날로 안 좋아졌고 최악을 경험하는 날이 늘어만 갔다. 

환경이, 상황이 힘들었지만 그때의 나는 

내 존재에 대해 전혀 가치가 없게 느껴졌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수 없는 우리, 엄청난 빚으로 허덕이는 

우리 내 존재, 자아상도 그렇게 각인되어 버렸다. 

나에게 그런 믿음과 신념을 심어준 엄마를 원망하거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내 현실을 탓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육아서와 심리서, 자기계발서를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우리들이 처한 현실과 모든 문제로 보여지는 것들은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 치유>라는 책을 읽으며 

심장이 쿵쾅거리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치유'라는 단어에 혹해서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주었다. 

이 책의 저자 루이스 L. 헤이 여사는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신념의 대부분은 단지 어릴 때 배웠던 믿음일 뿐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렸을 때, 세상은 두려운 곳이라고 배웠다면 

우리는 이 말을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낯선 사람을 신뢰하지 마라.", 

"사람들이 너를 속일 거야."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우리가 어렸을 때 세상은 안전한 곳이라고 배웠다면 

우리는 이 말을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 모든 곳에 있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게 된다고 쉽게 믿는다. 

어렸을 때 "다 내 잘못이야."라고 말하도록 배웠다면, 

항상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항상 "미안해."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p.64 

나는 하윤이이가 커 가면서 육아의 딜레마에 부딪쳐 

육아서와 심리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것들을 배우게 되었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이전에는 내가 어떤 생각과 믿음, 신념을 지니고 있는지조차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 살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스피치수업을 몇 주간에 걸쳐 수강했던 적이 있다. 

강사님이 수업 중에 "세상은 풍요롭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살면서 나에게 그 누구도 세상은 풍요롭다고 알려 준 사람이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해서 제대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던 엄마를 대신해 

학교 가는 시간 외에 짬나는 시간은 무조건 일을 했다. 

주말에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렇게 번 돈은 거의 

가족의 생활비로 들어갔었고 늘 빚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를 받았다.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고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비좁은 지하 방의 월세도 

내가 번 돈으로 고스란히 들어갔었다. 

한 달이라도 쉬면 월세를 내지 못했기에 나는 늘 움직여야 했다. 

나의 20대. 그 때는 그저 매일 하루하루 버티듯 살았었기에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 풍요롭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처해 있는 상황, 주변 환경을 보고 무의식에 학습하며 

나 스스로 받아들인 나의 자아상을 다시 되돌리고 

새로운 마인드를 마음속에 장착하기까지, 

그리고 새로운 신념으로 나를 리셋하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가진 무의식의 신념들을 

아이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미치듯이 노력한다. 

내 아이들에게는 세상은 풍요롭고 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무엇을 생각하건 무엇을 말하건 우주는 "맞아, 그래, 좋아."라고 반응한다고 

믿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세상은, 삶은 믿을 수 없고 척박하고 힘겹기만 한 것이라고만 믿어왔던 

내 생각과 믿음과는 달리 사랑은 늘 우리 주변에 있고 

내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우리는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그것이 진실임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녹록치 않고 척박했던 

삶의 무지하고 미숙했던 나는 언제 어디서든, 고통스럽게 느끼던 

그 순간조차도 매 순간 사랑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알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느냐는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 쳐해 있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알게 된 이 사실들을 내가 가장 힘들고 고단하게 지냈었던 

20대의 그 시절에 알았더라면..'  

그렇지만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모르고 있던 지혜를 

하나하나 알아가고 깨달아 가는 건가보다 싶기도 하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성숙하게 하루를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25~32쪽)

<엄마표 힐링육아 독서처방전>

오지민(하윤이사랑) | 북씽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