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우리반 아이들이 너무 좋다.
사랑스럽고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작년 1학년 담임이었을 때 나는 불독같은 얼굴을 하고
'이놈들~ 말 안들으면 혼내줄테다~' 이런 메세지를
주고 있었는데 올해 아이들은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난다.
까불어도 좋고 말을 안들어도 좋고
수업시간에 딴소리를 해도 좋다.
와~ 나 이만큼 성장한거야?
스스로 이렇게 자뻑에 도취하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것이 아니다.
올해 같은 학년 선생님들,
나는 그분들이 너무 좋다.
보고만 있어도 좋다.
아무리 시시껄렁한 농담을 해도 나는 진심으로 재미있고 웃기다.
자신들은 독재자라며 말 안 듣는 애들은 걍 버리고 간다
하시지만 애들을 대하는 눈빛이 부드럽고
늘 웃고 계시는 선생님들.
어느새 18년차 교사가 되다보니 원로 교사급이 되었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아니라 동년배와 함께 있는 기쁨.
올해 나는 그 기쁨을 누리고 있다.
선생님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행복하고
또 나도 그분들을 위해서 무엇이건 하고 싶다.
동학년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행복해지니
우리 반 아이들의 왠만한 장난에도
내 마음이 출렁거리지 않는다.
1학년 담임을 하며 깨달은 가장 큰 메세지는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이다.
당연히 학교에 오고, 당연히 숙제를 하고,
당연히 수업 시간을 지키고, 당연히 화장실에는 조용히 갔다 오고,
당연히 수업시간에는 자기 자리를 지키고,
당연히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주목해야 하고,
수업시간에 늦었으면 당연히 표 안나게 자리로 돌아가야 하고
가위질 하고 남은 것은 당연히 치워야 하고
풀은 당연히 뚜껑을 닫아야 하고
물건을 잃어버렸으면 당연히 주변 부터 살펴야 하고
화장실에서 용변 보면 당연히 혼자 처리할 수 있어야 하고
가정통신문을 받으면 당연히 가방에 넣어야 하고
학교 올 때 입고 온 잠바는 집에 갈 땐 당연히 챙겨가야 하고...
이 모든 '당연한 것들'에 도전 받는 1년이었다.
올해 4학년 아이들을 맡으며
이 극명한 온도 차가 '당연한 것'이 아님이 새삼 고마웠다.
내가 당연하다 믿었던 것이 1~3학년 선생님들을
노고가 쌓인 것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은 어찌나 감격적인지...
시끄럽다가도 박수 1번 이라고 낮게 읖조리면
바로 조용해지는 우리반 아이들이 너무 고맙다.
수업 방해하는 친구에게 조용히 '00야 1번' 하고 말하면
바로 알아듣고 중지하는 아이들이 너무 신기하다.
줄서며 앞 뒤 친구랑 몸으로 장난 치는 친구에게 다가가
어깨를 살짝 잡아주면 무엇 때문인지 알아차리고
바로 중단하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아이들을 맡고 한달 동안 나는 딱 1번만 신경질을 냈다.
화를 낼 일이 없다. 너무 신기하고 대견하고 고마워서...
작년 한해
아이들에게 친절하지 못하고, 신경질 적으로 대하고,
정말 승질대로 지랄거린 내가 나쁜 선생인줄 알았다.
선생을 하기엔 인성이 너무 부족하다 느꼈다.
우리반 아이들이 불쌍했고 다른 반과 수없이 비교했다.
올해 맡은 아이들과 지내는 나를 보니
나부터 행복한 것이 왜 중요한지를 알겠다.
좋은 선생이 되려 하기 전에 행복한 선생이 되어야 하는구나.
세상에 나쁜 선생은 없다.
절대적으로 나쁜 선생도 절대적으로 착한 선생도 없다.
나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내가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을
묵묵히 하는 수행자가 되길 바랬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하는 그 명확한 진실을 외면한 채
좋은 선생이라면 해야 할 것들에 위배되는 나를 닥달하며
다그치며 내가 얼마나 나쁜 선생인가를
복기하는 짓을 그만두었어야 했다.
나는 우월하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나부터 행복하자' 란 명제가 나만 비껴갔을 것이다.
나는 내가 좋은 선생이기에 올해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웃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나는 내가 훌륭하기에
아이들이 마냥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 아님을 안다.
나는 언제든지 '내 행복의 균형이 깨어질 때'
상상 이상으로 무너질 수도 있음을 안다.
처절하게 무너졌던 작년이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올해의 행복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까.
'당연'하게 주어졌다고 생각하기에
고마운 줄도 몰랐던 행복을 어떻게 알수 있었을까.
그건
늘 당연하게 행복했던 선생님들이 몰랐던
나만의 행복이다.
세나선
세상엔 나쁜 선생은 없다.
진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