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본기>
이강룡 저 | 창비
일기를 쓰는 목적은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면, 의사소통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이해도는 높아지고 오해는 줄어들기 때문에
친구와 사이도 좋아지고, 선생님이나 부모님과도 대화가 더 잘 통하죠.
일상생활도 더 즐거워지고요.
일기를 쓰는 또 하나 목적은 실천력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차근차근 실천하며 이루어가는
자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아주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일기는 그 보람된 여정의 유능한 코치이자 훌륭한 동반자입니다.
-이강룡
1. 자기 전에 쓰기보다는 생각날 때 쓰자.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쓰기보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쓰세요.
그래야 더 생생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 밖으로 재미있는 간판을 보았는데,
한참 지나서 떠올리려고 하면 생각이 안 날 수도 있잖아요.
재미있는 걸 보았을 때 사진을 찍어 두거나
핸드폰에 메모를 해 두면 어떨까요.
“시청 앞을 지나다가 <먹으면 돼지>라는 고깃집 간판을 보았다.
우리말은 재미있다.” “우리 아파트 동대표에 출마한 할아버지의 경력은 한 줄이다.
<1976년~2015년: 우체국 근무, 우체국장으로 정년 퇴임>. 왠지 대단하고 멋있다."
2. 오늘 일만 쓰기보다는 어제 일도 쓰자.
일기는 오늘 일어난 일을 쓰는 글이라기보다는
오늘 떠오른 생각을 쓰는 글입니다.
지난 주에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며 오늘 느낀 점을 써도 되고요,
훨씬 오래 전에 일어났던 일을 다시 정리해서 써도 좋아요.
3월 2일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떠오를 겁니다.
오늘이 새 학기 첫날이라면 되짚어 볼 만한 소재 아닐까요?
어린이날이라든지 크리스마스, 생일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됩니다.
특별히 쓸 이야기가 없으면 작년 오늘에는 무엇을 했는지
지난 일기장을 들추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1년 전 오늘과 지금 오늘은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을 테니까요.
그걸 솔직하게 쓰면 훌륭한 자기 반성 기록이 됩니다.
일기의 소재는 ‘오늘’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늘까지’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래서 일기의 소재는 날이 갈수록 풍부해지죠.
3.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옮겨 적자.
글쓰기가 어렵다면 오늘 하루 했던 말 중에서
일부분을 골라 글로 옮겨 적으면 어떨까요?
친구들과, 부모님과, 선생님과 나누었던 말을 떠올리며 글감을 찾아보는 거죠.
카톡으로 주고받았던 메시지도 좋습니다.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쉽고 편해요.
그날 주고받은 대화나 메시지를 되짚어 보면
‘아, 그 메시지는 보내지 말걸…’, ‘휴,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나 아쉬움이 들 때가 있을 거예요.
그건 더 좋은 글감입니다. 바로잡고 싶은 내용을 일기에 표현해 보세요.
저자 사인회에서 독자 한 분이 저한테 “친구한테 선물하려고 하는데요,
책에 <은정 씨 화이팅!>이라고 써 주세요.”라고 부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화이팅이라는 표현을 안 씁니다.” 하고 거절했어요.
되게 재수 없죠. 며칠 동안 후회를 많이 했어요.
“화이팅보다 더 근사한 표현을 적어 드릴게요.”라고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자기가 썼던 말을 돌이켜 보면 부족한 점이 보이고
다음에 더 낫게 표현하려는 마음이 생겨요.
그래서 일기를 열심히 쓰면 표현력이 좋아집니다.
4. 뉴스에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뉴스에 나온 사건이 우리 동네나 학교에서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 4학년 학생이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우리 아파트는 내진 설계가 잘 됐을지 궁금하다.”
뉴스에 관심을 가지면 쓸 이야기가 무척 풍성해집니다.
뉴스에 나온 이야기에 덧붙여 우리의 생활과 연관을 지어 보면
더 좋은 글이 되죠. 뉴스만 간추려 쓰면 평범한 글에 머물지만
자기 이야기를 덧붙이면 독창적인 글이 됩니다.
인터넷으로 내진 설계에 관한 정보를 찾아 보거나
관리사무소에 문의해 보고 나서 일기에 적으면 더 좋겠죠?
5. 새로 알게 된 사실을 기록해 두자.
새로 알게 된 정보들 역시 좋은 소재입니다.
“주말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대동여지도를 다 펼치면
가로 4미터에 세로는 8미터나 된다. 거의 우리 교실 넓이다. 엄청 크다.”
잘못 알고 있었는데 제대로 알게 된 사실이 있으면 더 흥미로운 글감이 됩니다.
“대동여지도는 ‘대동여-지도’라고 끊어 읽으면 안 되고
‘대동-여지도’라고 읽어야 한다. ‘여지’는 ‘전국’이라는 뜻이다.”
6. 궁금한 점이나 어려운 문제를 적어 두자.
우리가 매일같이 하는 평범한 일과 속에서
일기 소재를 찾는 것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숙제를 하면서
일기 쓰기까지 해치우면 일석이조잖아요.
숙제를 하다 보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기도 하고
궁금한 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일기에 적으세요.
“수학 시간에 배운 제곱킬로미터와 헥타르 사이의 관계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일기는 설명문도 아니고 주장하는 글도 아니니까,
이렇게 해결이 안 된 상태로 그냥 적어 두어도 괜찮습니다.
신기한 점은요, 이렇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기록해 두면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함께 생긴다는 거예요.
어떤 책에서 “1헥타르는 100m X 100m인데
축구장 하나 넓이 정도 된다.”라는 구절을 딱 찾았다면,
그건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기록해 둔
여러분의 평소 노력 덕분일 거예요.
좋은 일기 소재가 하나 생겼지요?
일기를 열심히 쓰다 보면 문제 해결 능력도 좋아집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문제 해결의 첫 단계인데,
일기는 평소에 그런 훈련을 시켜주니까요.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되면 자연스럽게 학습 능력도 좋아집니다.
7. 좋아하는 분야를 정해 주제 일기를 쓰자.
가치 있는 일을 이루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만에는 다 끝낼 수 없는 일이 많죠.
동식물을 키우는 일, 악기를 배우는 일, 외국어를 익히는 일,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는 일, 친구와 절친이 되는 일… 등이 다 그렇습니다.
좋아하거나 가치 있다고 여기는 분야 하나를 정하여
꾸준하게 주제 일기를 써 봅시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새로 본
애니메이션의 감상 소감을 적어 보는 겁니다.
외국어 공부를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학습 진행 과정을 일기에 기록해 두는 거죠.
나중에 흥미가 붙고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면
별도로 주제 일기장을 하나 마련해도 좋습니다. 나중에요.
8. 길게 쓰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쓰자.
일기에 그날 벌어진 일을 이것저것 다 쓸 필요는 없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만 쓰면 됩니다.
그 대신 그 하나를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적어 두지 않으면 시간이 한참 지나서
예전 일기를 펼쳐 보았을 때 자기가 왜 그렇게 적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날씨: 흐림’이라고 적기보다는
‘날씨: 양털 구름이 하늘에 가득 참’이라고 적는 게 좋아요.
그래야 그날의 느낌이 잘 보존되니까요.
“고기뷔페에 가서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참 맛있었다.”라고 써도 되지만, “고기뷔페에 가서 삽겹살,
목살, 등심, 차돌박이 등을 먹었다. 맛이 조금씩 달랐다.”라고 쓰면
조금 더 낫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렇게
평소에 구체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학생이
나중에 무겁고 중요한 주제로 글을 쓸 때도 치밀하게 잘 씁니다.
9. 상황으로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자.
하늘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한국민속촌으로 현장 학습을 갔습니다.
한 학생이 그날의 경험을 일기에 적었습니다.
“옆에 서 있던 흰 말이 갑자기 내 유인물을 뜯어 먹었다.
나는 엉망이 된 유인물을 뺏기지 않으려고 말과 한동안 씨름을 했다.
유인물 모서리에 호치키스 침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을 사랑하자, 생명을 존중하자… 이렇게 적지 않았는데도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죠?
실제 일어난 상황을 잘 표현하면 그 안에 감정이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거든요. 상황을 잘 묘사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이
감정이나 생각을 적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상황은 쏙 빼 버리고 감정만 표현하면 곤란해요.
10. 지난 번 다짐을 오늘의 실천으로 바꾸자.
한참 전에 썼던 일기를 다시 펼쳐 보면
계획하거나 다짐했던 일들이 보일 거예요.
아직 실천하지 못했거나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도 있겠죠.
그 중에 하나를 골라서 그 일을 오늘 조금 진행하세요.
오늘 다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조금만 발전시키세요.
작년 어버이날 일기에 “외할머니께 편지를 보내드려야겠다.”라고 적었는데
열 달이 지나도록 아직 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 당장 오늘 실천하겠다고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일단 예쁜 편지지와 편지 봉투 먼저 사세요.
그건 편지 쓰는 일보다는 쉬우니까요.
그리고 오늘 일기에 “외할머니께 편지를 쓰려고
문구점에서 예쁜 편지지와 봉투를 샀다.”라고 적으세요.
이렇게 조금씩 진행시키는 것이 실천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작년 3월 26일 일기에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돌아가신 날이다.
시간 내서 <안중근 평전>도 꼭 읽어 봐야지.”라고 써 놓고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면, 오늘 다 읽으려고 하지 말고
일단 책을 마련하세요. 오늘 일기에
“엄마에게 <안중근 평전>을 사달라고 부탁했다.”라고 적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야 다음 주 일기에 “<안중근 평전> 머릿말을 읽었다.”라고
쓸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겠지요?
창비 홈페이지에서 퍼왔어요.
우리집 두 아이들이 정말 잘하고 있는 일,
지금까지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는 점.
어떨 땐 참 신기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