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아버님~!

그전에도 여러 맘들께 고민을 말씀드리고 조언도 얻고 했지만
요즘들어 정말 도통 알수없는 아이때문에
몇달 속을 끓이다가 결국은 푸름아버님께 도움 요청해봅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알고 싶어요..

우리 아이는 39개월 남자아인데요
참으로 희한하게도 제 생각인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면서 점점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가는거 같아요..

제 기억에 아이가 책의 바다에 빠졌을때는
생후 9~10개월쯤이었던거 같거든요.
그땐 제가 넘 무지했던지라 집에 책도 얼마 없었고..
전집은 하나도 없고 단행본 10여권 있었나..
그런데 그 몇권 안되는 책을 매일 밤새우며 읽고 또 읽고 했었으니까요..

이제 겨우 앉기만하는 어린애가
밤새우며 가만히 앉아서 읽어주는 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기도 해서 열심히 읽어주긴 했지만
어떤책을 넣어줘야 할지는 몰랐죠..
이게 첫번째 저의 실수인거 같아요..

암튼 그때 이후론 제가 책에 돈을 쓴게 아니라
각종 교구를 사는데 돈을 썼답니다.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라 교구를 한세트 사면
그거 할부내느라 또 책 사는게 힘들었죠..
물론 그때 푸름이를 알았더라면 무리해서라도
사줬을테지만...ㅜㅜ

그러면서 아이는 교구에만 빠져들었고...
현재 39개월까지 오면서 책에 대한 흥미는 점점 떨어져
매일 교구만 가지고 놀고
아니면 기차놀이, 자동차놀이, 블럭놀이, 그림그리기등에만 열중합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좀 학구적인 놀이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예를들어 수막대 같은걸로 덧셈 뺄셈 하거나
삼각형은 변이 몇개고..꼭지점이 몇개고.이런거 살피고 있고..
특이하게 퍼즐은 안좋아합니다..

밖에 나가 노는것도 싫어해요..
좀 예민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어쩌다가 맞은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또래라면 질색하네요...
이건..언젠가는 나아지려나요?
그렇게 믿고 있긴한데..
일부러 또래들이랑 아직은 안놀게 합니다.
아이 맘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은듯 해서요..

암튼 집에서만 노는거 좋아하는데
(밖엔 나가자고 해도 싫어해요..집에서 놀래..맨날 이러고)
그렇다고 책을 읽는건 아니예요..

요즘들어 산 책이 위너스, 북룸, 톡톡, 미라클인데
톡톡만 좀 보고 나머진 시들시들...
일부러 읽어주면 좀 보긴 하는데
왜 먼저 읽어달라고 가져오진 않는지...

그나마 자기가 보겠다고 선택하는 책들은
요리책, 도감, 학습지, 교구 팜플렛, 놀이법 설명서..
뭐 이런것들이랍니다...
오히려 제 수준에 맞지도 않는 (어디서 얻은 책인데)
초등학생용 과학책 같은거 좋아하구요..

이런것만 좋아하고 창작은 잘 안보는게
감정이 좀 발달이 덜되었다 싶기도 하구요..
책을 읽어도 주인공과 감정의 동화가 안이루어지는듯 합니다.
그러니까 지식 전달 위주의 책들만 좋아하는거 같구요..

푸름이 닷컴 아이들과 비교해서는 빠른거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에선 머리 좋은것 같다는 말은
많이 듣는 아이거든요.

한글은 32개월에 떼서 막힘없이 빨리 읽는 수준이고
영어는 일부러 시키진 않았는데 좋아하구요..
혹시 아나 싶어서 노트에 영단어를 한 백개 쭉 써보며
읽어주지는 않고 철자만 보고 이게 뭐게? 물어봤더니 거의 다 맞추네요..
한자도 너무 좋아해서 지금 서른개 정도 알고있구요..
야생화 책 좋아해서 그런거 열심히 보고
제게 설명도 해주고 하루만에 꽃 이름 100여개를 다 외워요..
그림도 잘 그리는 편이고
색깔 구분 너무 잘 하고요...좀 특이한 색들도 다 알고
한동안은 물감 색 여러가지 섞어서 무슨색이 나오나
그 놀이에 빠졌었답니다.
숫자도 좋아해서 덧셈, 뺄셈은 하고
요즘은 곱셈도 대충 알고요..

그래서 또 좋아하는 놀이중에 '꽃박사 놀이'가 있는데
도감을 아무페이지나 펼치고 이름을 가린채로
무슨꽃이게? 물어보면 아이가 맞추는 놀인데
맨날 이 놀이 하자고 하고...넘 좋아합니다..

그리고 학습지 좋아해서 맨날 그런류만 보려고 하고요..

그런데 책은 정말 예전에 보던것만 가끔 볼뿐
새로 산 책 꺼내보지 않네요...
그런게 지금 장장 3~4개월은 지속되고 있는거 같구요..

요즘은 맘 비우고 그래..너 하고 싶은거 실컷해라 싶어서
그냥 냅둔게 1달 이상 되는거 같은데
여전히 스스로 안봅니다..

요 며칠은 하루에 3~4권 보는거 같아요..
그것도 봤던 책들만...
정말 이런 시기가 너무 길어지고 매일매일 갈수록
더 심해지니까 이젠 정말 걱정이 됩니다..

안읽다가 잘읽다가 하는 굴곡이 있을거 같은데
우리 애는 갈수록 잘 안읽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하루에 3권을 읽는다면 한달전엔 10권을 읽었고 1년전엔 20권을 읽었다고 할수 있답니다....
갈수록 떨어지지요...
일부러라도 책읽기를 강요해야하나요?
역효과 날까봐서 전 애가 싫어하는듯하면 당장 그만두는데..
이러다간 일부러 안보여주면 한권도 안볼 테세네요.

밤새워 책읽으면 이쁘기라도 할텐데
밤새워 다른짓만 하고 새벽 5시에 자서 낮 2시쯤 일어나니
정말 짜증이 나려고 해요..

이런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제가 어떻게 책읽기를 유도해줘야할지..
저는 아이앞에서 제가 책읽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티브이도 보지 않는데
그래도 아이에겐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하는거 같아요..
엄만 책읽어라 나는 논다..이런 식이니..
푸름 아버님의 도움말씀 절실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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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님

갈수록 책에 대해 관심이 없어진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엄마는 크게 두가지 면에서 아이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요리책, 도감, 학습지 등등 오히려 제 수준에 맞지도 않는 초등학생용 과학책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그런 종류의 책이 아이의 수준에 딱 맞는 책입니다. 발달이 빠른 아이들은 물론 창작도 좋아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사실을 전하는 과학책을 더 좋아합니다. 따라서 지금 사주신 책보다는 아이의 수준이 먼저 가고 있으니, 아이가 좋아하는 자연과학 분야의 책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하셔야 합니다.

둘째는 기차놀이, 자동차놀이, 블럭놀이, 그림그리기, 꽃박사놀이 등등 모두가 아이의 지적, 정서적 발달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인데, 그런 놀이를 책읽기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네요. 오히려 그런 놀이를 통해 책읽기를 유도할 수 있는데, 어머님은 그런 놀이에서 빠져 나오기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꽃박사놀이'는 자연을 분류하면서 지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놀이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좀더 관찰했으면 책을 안보는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보세요! 요즘들어 산 책중에서 톡톡만 조금 본다는 것은 아이는 지금 최선을 다해 사물을 분류하고, 기억하고, 조작하면서 지성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좋아하는 톡톡 같은 자연과학책을 풍부하게 사주면 다시 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해 오셨습니다.
자연과학 수준을 높이시고 좀더 기다리세요. 그러면 언제 그랬냐 싶을 때가 올겁니다. 교구에 빠지는 것도 한때입니다. 교구보다는 책이 더 복잡하고 흥미로우니까 교구가 충족되면 책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교구보다는 먼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눈에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창작동화는 마음속에서 당분간 잊으세요. 발달이 빠르기 때문에 자연과학책에 몰두하는 것이니까 마음속에서 걱정과 짜증도 잊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