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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대한민국 부모>의 저자, 정신분석가 이승욱 

박사님이 사교육 없는 세상에서 한 강연을 

시사인 김은남 기자가 정리한 것입니다. 



#

강의 제목이 ‘대한민국 부모, 안녕들 하십니까’던데, 

나는 이걸 바꾸고 싶다. 

‘대한민국 부모,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그런 세상이 왔다고 치자.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사교육 걱정이 없어지면 행복할 것 같은가? 


내가 묻고 싶은 말은 개인으로서 살아본 적이 있는가?다.

누군가의 아들, 딸이나 부모 말고, 배우자 말고,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꿈꿔본 적이 있으신가?

‘내가 원하는 세상은 무엇이고,   

가?’ 이 두 가지를 함께 고민하지 않고는 

답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먼저 생태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간은 ‘적응’하는 존재인가, ‘순응’하는 존재인가. 

우리는 적응을 “쟤는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해” 

하는 식으로 사용한다. 이때 적응은 

타인이 정해놓은 룰과 규칙에 잘 복무한다는 의미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양심과 윤리를 팔고, 

회계 조작도 서슴지 않는 직장인, 의자에 붙어 앉아 

시키는 대로 공부 잘하는 학생이 곧 회사와 학교에 

잘 적응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게 과연 적응인가? 

나는 '순응'이라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이렇게 순응하는 사람을 요구한다. 


#

요즘 보면 무기력한 아이들이 늘고 있다. 

아무 데도 흥미가 없고, 관심·열정도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상담실에 들어선 부모들은 사정한다. 

“우리 애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럴까?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해서 머리가 이상해진 것일까? 

정신분석학자들은 어릴 적 아이에게 충분한 자율을 

허용하지 않았던 데서부터 문제의 뿌리가 형성됐다고 믿는다.


발달 과정상 두세 살은 중요한 탐색의 시기이다. 

두세 살 난 어린아이는 신기한 게 있으면 무조건 

입으로 가져가면서 세상을 탐색하며 자율성을 발달시킨다. 

그런데 이 시기 부모의 양육 행태를 관찰해보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안 돼” “손대지 마” 같은 금지 명령어다. 


자녀가 커가는 과정에서도 부모는 아이들의 

야생성을 끊임없이 거세하려 든다. 정신을 완전히 표백해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하는 아이들로 기르려 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의 장래가 걱정돼 그런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따져보자. 

요즘 부모가 아이들한테 흔히 묻는 말이 “넌 꿈이 뭐니?”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반드시 ---로 끝난다. 


“엄마, 난 평생 여행하면서 살고 싶어요” 하면 

“어머, 좋은 생각이구나” 해놓고 “여행을 하고 

책을 써서 먹고살면 되겠네. 그럼 지금부터 

글쓰기 공부 좀 해야겠다”라는 식이다(웃음). 

이러니 아이가 미치는 거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세속적인가. 

때로는 ‘내 새끼가 맞나’ 싶을 정도다. 

한편으로 세상을 포착해내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다. 

논리가 아닌 감각으로 본질을 간파한다. 


내가 아는 부모가 있는데, 아들이 학교도 가기 싫어하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 보이기에 물었다고 한다. 

“넌 도대체 뭘 하고 싶냐”고. 그랬더니 

“정규직 청소부가 되고 싶어요” 하더란다. 


부모는 기가 막혔지만 이 아이는 아는 거다. 

세상에서 업그레이드를 강요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직업이 청소부라는 걸. 

요즘 세상은 취업에 성공했다고 끝이 아니지 않나. 

자격증 따고 어쩌고 하면서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요구한다. 

아이는 이를 꿰뚫어보고 자신이 안착할 곳이 

청소부(단 정규직!)임을 정확히 짚어낸 거다. 

얼마나 똑똑하고 계산적인가. 


이런 아이들한테 부모들은 말로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어엿하지 않거나(세속적 성공과 

거리가 멀거나), 의미가 적어 보이거나,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가져다줄 것 같지 않은 일은 ‘하고 싶은 일’에서 

제외시킨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본심을 

간파하고, 결국 많은 것을 유예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부모만의 잘못은 아니다. 

파업하는 노동자 연봉이 7000만~8000만원이라고 

비난하면서 재벌을 위한 법인세 인하에는 침묵하는 

사회에서 교육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노동자 연봉이 1억이 넘고, 1년에 4주씩 휴가를 

쓸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입시에 목을 매겠나. 


#

그럼에도 내가 부모들을 만날 때면 

“아이 장래 말고 당신 장래가 더 걱정된다”라고 말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가 있다. 

아들이 명문대에 합격한 날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넌 나처럼 회사원으로 살지 말라”고. 

그 아들이 충격에 빠져서 상담실을 찾았다. 

휴일도 없이 뼈 빠지게 일하면서 회사에 충성했던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을 보며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이다. 


이러면서 아이에게 과연 꿈을 찾으라 할 수 있나? 

부모 자신조차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른 채 

전전긍긍 살고 있으면서? 


쉰이 다 된 나이에 펀드매니저를 그만두고

극작가를 하겠다고 나선 친구가 있다. 

당연히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면서 살던 집 

규모도 줄이고 외식도 끊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굉장히 행복해하더란다. 

부모가 자기들에게 이것저것 말 시키고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의견도 묻곤 하니까. 

공부 아닌 다른 대화거리가 생기면서 

관계가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다. 


결국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누군가의 아들·딸, 부모, 배우자로서의 나’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나’의 삶을 꿈꿔야 하는 이유가 여기있다. 

자녀를 대학에 보낸 뒤, 모든 것을 쏟아 부었는데 

갑자기 삶이 공허하게 느껴진다며 상담실을  . 

대학을 못 보내면 못 보낸 대로 좌절감에 빠진다. 

그러면서 자녀한테는 “너라도 잘살아라” 한다. 

나는 부모들이 아이의 성장으로 자신의 성장을 

대체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이러니 아이들이 “우리가 부모의 대리인 같다”라며 

괴로워하는 거다. 


#

물론 개인으로서 살라는 게 가족을 팽개치고 

책임을 방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지금부터는 부모의 책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아버지의 절멸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가 생겨난 것은 근대 이후인데, 어찌 보면 가장 큰 

피해자가 아버지다. 그 전까지 자식에게 가장 중요한 

스승은 아버지였다. 직업을 세습했고, 아버지를 통해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 (농사, 추수, 지붕수리 등)을 배웠다. 


그런데 근대 이후 아버지가 자식한테 가르칠 것이 없어졌다. 

오늘날 아버지의 역할은 ‘돈 벌어다주는 사람’일 뿐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 ‘멘토’ 열풍이 불었는데 

이게 다 ‘성공한 아버지’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아버지는 멘토 반열에 

오를 수 없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고향 친구들과 모임을 갖는데, 

“우리가 공범이다”라는 얘기를 해서 놀란 일이 있다. 

대구에 사는 50대 가장들이었는데, “우리라고 

선장이랑 달랐겠냐” “우리라고 배에 과적하는 것 막고 

불법 증축하는 걸 막을 수 있었겠냐”라고 한탄하는 거다. 

이걸 보면서 세월호가 엄마들한테는 ‘굉장한 슬픔’으로 

다가왔지만 아빠들한테는 ‘굉장한 죄책감’으로 다가왔구나, 

싶기도 했다. 


부정과 비리에 눈감은 게 자기 한 몸 때문이었나? 

아니다. 다 자식들을 위해 참은 거라 생각하며 

살았을 텐데 그 자식이 죽어버렸으니, 

가장 핵심적인 알리바이가 처참하게 사라져버렸으니….


그러니 부모라면 자문해볼 일이다. 

자녀에게 어떤 삶을 물려주고 싶은지. 

특히 사춘기 때가 중요하다. 요즘 중2 보고 

반인반충(半人半蟲) 내지 호모인섹트(homo insect)라 

하던데, 청소년은 일종의 ‘사회적 신생아’라 할 수 있다. 

2차 성징이 나타나 몸은 완성돼가지만 사회적으로는 

신생아나 다름없다. 


과거에는 아버지가 자녀를 데리고 다니며 어른에게 

인사하는 법, 남의 집 방문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관계 맺는 법을 배워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명문대 나와서 대기업 취직한 

젊은이를 만나면 처음엔 ‘내가 일을 잘할 수 있을까요?’ 

걱정한다. 그런데 몇 달 지나면 ‘관계’ 때문에 힘들어한다. 

아버지처럼 멘토를 통해 관계 맺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다. 


‘그럼 엄마는 뭘 해야 하나요?’ 묻고 싶을 거다. 

초등학교 4~5학년 정도까지는 엄마가 아이들의 

마음을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 때론 설득하고, 

때론 ‘자꾸 말 안 들으면 엄마 집 나갈 거야’라고 

협박도 해가면서.  년이 되면 . 

프로이트가 그랬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라고. 


모성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아이의 삶을 

기획하고, 관리하고, 조작·통제하려 드는 어머니는 

어쩌면 생명과 가장 먼 존재일지도 모른다. 

담배를 피우거나 ‘야동’ 에 빠진 자녀를 보고 기겁할 

필요도 없다. 

정신분석에서는 “모든 증상은 메시지다”라고 말한다. 

아이가 어떤 증상을 보일 때는 그 행위를 통해 

말하려는 메시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이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인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면서 숨은 메시지를 읽으려 노력해야지,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 막으려 해서는 그 행위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나도 아들 녀석이 공부는 

뒷전이고 낮에는 축구하고 밤에는 게임만 하면 속 터진다.

그렇지만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게 뭘까’ 생각하다 보면 

답이 나올 것도 같다. 

억압이 없는 상태가 곧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대학은 보내야 할 텐데 어떻게 내버려두냐고? 

정형화된 삶을 포기하면 가능하다. 우리는 남을 너무 의식한다. 

“남들처럼 40평쯤 되는 아파트 살고, 남들처럼 1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 다니고, 남들처럼 자식놈 ‘인(in)서울’ 

시키고 싶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인가요?” 

묻는 분들이 있는데, 바로 그 ‘남들처럼’이 문제인 거다

로 한국에서는 가족이 결사체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교육을 위한 결사체랄까? 


부모부터 개인으로서의 삶을 잘 살면서 

아이들도 개인으로 잘 성장시켰으면 좋겠다. 

프랑스 68혁명 때 라캉은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불가능한 세상을 꿈꾸고, 그런 세상을 가능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역사에서 우리가 경험했듯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내용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용적 민주주의는 ‘섬세함’과 ‘존중’, 그리고 ‘연대’로 

채워질 때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이런 내용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출처: 시사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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