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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바랄게 없는 삶...


 



우리는 실은 내일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어제를 향해서 걸을 수 있다. 

우주 식민지를 향해 걷는 것도 가능하지만 

석기 문화를 향해서 걸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한쪽으로만 흐르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큰 착각이자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와 마찬가지로 

과거를 향해서도 흐르고 있는, 항상 지금이라고 하는 

이 순간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86~87쪽)









야자잎 모자를 쓰고 22



야자잎 모자를 쓰고

바다를 본다

사람들은 나아간다

세계로 세계로

우주로 우주로 눈먼 쥐처럼 나아간다

나는 반대로 물러난다

나에게로 나에게로

흙으로 돌로 숲으로 물러난다

야자잎 모자를 쓰고

바다를 본다 오래도록

우리 모두의 고향인 바다를 본다




- 아버지에게



왜 너는 도쿄 대학에 갈 생각을 안느냐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물었다

저는 와세대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때 나는 

키에르케고르 전집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시험 공부할 사이가 없었다.


왜 너는 대학을 그만 두냐고

대학 3학년 때 아버지는 물었다

나는 방자하게도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생각이 없었고

졸업장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고

중학교만 졸업한

아버지의 길에도 거스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왜 너는

아나키스트가 되었냐고

올 삼월에 암으로 죽은 친구가 물었다

그 친구는 깊은 연민과 힘을 가지고

평생을 사랑 하나로 일관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디나 다 중심이고

또 거기에는 그 나름의 질서가 있으니

정부 따위는 필요없는 게 아니냐고 대답하지 않고

너 또한 아나키스트일 게 분명하다고 대답했다


왜 너는

도쿄를 버리고 이런 섬에 왔느냐고

섬 사람들이 수도 없이 물었다

여기에는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무엇보다도 수령이 7200년이나 된다는 죠몬 삼나무가

이 섬의 산 속에서 절로 나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지만

그것은 정말 그랬다

죠몬 삼나무의 영혼이

이 약하고 가난하고 자아와 욕망만이 비대해진 나를

이 섬에 와서 다시 시작해 보라고 불러 주었던 것이다


왜 그대는

지금도 외롭고 슬프냐고

산이 묻는다

그 까닭을 저는 모릅니다

당신이

저보다도 훨씬 외롭고 슬프고

훨씬 풍요롭게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그 까닭을 저는 모릅니다.


야마오 산세이 저, <더 바랄게 없는 삶> 중에서



#

시인 야마오 산세이는 세다대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다 중퇴했어요.

37살, 일본 열도 남쪽 끝에 있는 야쿠시마섬의 

오래 된 삼나무 숲이 베어지는 걸 막기 위해 

가족과 함께  섬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더 바랄 게 없는 삶'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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