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에워싼 페허의 한복판에
아직은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은 담장의 한 부분이
단단한 토대 위에 서 있다.
과학의 진리에 대한 나의 사랑이 그것이다.
똑똑한 벌들아,
너희의 이야기에 내가 몇 페이지를 덧붙이는 실험과 관찰을 하는데,
이 만큼의 사랑이면 충분하겠니?
내가 힘이 부쳐서 이 좋은 뜻이 곤경에 처하지는 않을까?
나의 친구들은 내가 너희를 오랫동안 혼자 내버려 두었다고 탓하고 있단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너희를 잊거나 피곤해 져서 그런 것이 아니란다.
나는 언제나 너희를 생각했다.
단지 나에게 시간이 없을 뿐이었다.
나는 불운과 맞서 싸우느라 시간이 없었다.
철학적인 일을 하기에 앞서서 먹고 살아야 했다.
내 친구들에게 너희가 그것을 말해다오.
그러면 그들은 나를 용서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관찰 기록 방식을 비난한단다.
나의 글쓰기 형식이 충분히 엄숙하지 않다는 것이,
다시 말해서 학문으로서 무미건조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란다.
그들은 한 페이지를 읽더라도 피곤하지 않다면 진리의 표현이 아니라고 한다.
만일 그들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철저히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모든 곤충들아,
침으로 무장하고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는 너희가 나를 방어해다오.
내가 너희와 얼마나 친밀하게 살고 있는지,
얼마나 끈기 있게 너희를 관찰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양심껏 너희의 행동을 기록하는지 증언해 다오.
나는 유일한 공식도 내놓지 않는다.
단지 눈으로 관찰한 사실만을 정확히 보고할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 소중한 곤충들아, 착하지만 방법이 없어서,
지겨운 이 사람들만큼 몸무게가 나가지 않아서
너희가 이들에게 그 점을 확신시킬 수 없다면 내가 대신 말해주마.
그들은 너희를 토막내지만, 나는 살아있는 너희를 연구한다고 말이다.
그들이 너희를 공포와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말이다.
그들은 고문실에서 작업하지만, 나는 파란 하늘 아래서,
매미의 노랫 소리를 들으면서 관찰한다.
그들은 세포와 원형질을 시험관에 내던지지만,
나는 너희의 본능이 최고도로 현시되는 모습을 연구한다.
그들은 죽음을 연구하지만, "나는 생명을 연구한다."
파브르가 자신의 상황을 곤충들에게 고백하는 글에서
생명에 대한 그의 사랑과 삶의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권위와 특권 의식으로 뭉친 당시 지식인들,
부와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학자들에 대한 실망감.
비록 자신의 가정에서 만큼은 권위를 행사하긴 했지만,
교육과 사회를 바라보는 파브르의 시각은 진보적이었습니다.
그가 기득권층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살았음은
평생을 따라다닌 그의 가난이 증명을 해줍니다.
♥ 교사시절
파브르(1823년 생)는 론 강이 지중해로 흘러드는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주변에서 생활했습니다.
고갱과 고흐의 그림으로 알려진 아를과 아비뇽이 인근에 있고,
지중해 연안 마르세유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가난으로 어린 시절부터 농장에서 일을 해야 했던 파브르는
아버지가 사준 <알파벳 그림책>과 <라퐁덴 우화>가
자극이 되어 배움에 대한 열망이 생깁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사범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초등교사가 되지요.
자신이 어렵게 공부했던 만큼,
배움의 열망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당시 여자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지만,
파브르는 소녀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열어줍니다.
생활과 동떨어진 교육보다는 삶에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월급을 털어 측량 기구를 마련하고,
교장을 설득해 실용 과목을 개설했습니다.
그는 학생들과 자연에 나가 측량기술을 알려주며 수학과
기하학을 가르쳤고, 현장에서 직접 관찰하며 자연을 가르쳤습니다.
보다 쉽게 가르치기 위해 월급의 대부분을 도서를 구입했고,
당시 알려진 식물과 곤충에 대한 논문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그는 책을 통해 의문이 들었던 부분을
직접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학자들의 연구가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알게 됩니다.
♥ 기존 학설을 뒤집다...
당시 학자들은 벌의 침이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파브르는 이 생각에 의심을 품었죠.
어떤 방부제도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노래기벌에 쏘인 비단벌레는 시간이 지나도
황금빛과 구릿빛 날개 색이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파브르는 휘발유를 서너 방울 떨어뜨려 봅니다.
더듬이가 움직입니다. 열흘이 지난 비단벌레에게
전류를 흘려보내 봅니다. 근육이 움직입니다.
심지어 비단벌레는 정상적으로 배설을 하기도 했고,
관절도 유연했습니다.
비단벌레는 죽은 것이 아니라 마비된 것입니다.
바늘 끝에 암모니아수를 묻혀 비단벌레를 찔렀더니
똑같은 마비 효과가 나왔습니다.
파브르는 노래기벌이 애벌레가 깨어났을 때
신선한 먹잇감을 주기 위해 포획물의 신경중추를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딱정벌레를
사냥하는 벌은 모두 여덟 종. 이중에서 단 한 종인
노래기벌만 비단벌레를 사냥한다는 걸 알아냅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쇠똥구리
당시 학자들은 쇠똥구리는 힘들면 도움을 요청한다고 했습니다.
파브르는 이것이 사실이라면 쇠똥구리의 지능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파브르는 다시 수많은 실험을 해봅니다.
쇠똥을 바늘로 찔러 고정시켜 보기도 하고,
쇠똥이 안 굴러가도록 함정을 파기도 합니다.
그렇게 14년을 관찰하며 서로 도우려는 행동이 아니라
단지 쇠똥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임을 알아냅니다.
♥ 교과서 집필
관찰을 토대로 쓴 그의 곤충 논문은 당시 주류 학자들에게
인정을 받긴 했지만, 저항과 시기 또한 심했습니다.
가난한 시골 학자라는 이유로 늘 차별을 당했죠.
파브르는 연구 시간과 생계를 위한 돈이 필요했지만,
그가 얻은 것은 생계비가 아닌 훈장 뿐, 결국 생계와 연구를 위해
교사를 포기하고 교과서를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어렵게 공부했던 경험을 최대한 살린 교과서였죠.
“이해하지 못하는 가르침은 사람을 퉁겨나가게 만든다” 며
가능하면 쉽게,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써나갑니다.
아이들이 배움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이야기 형식을 취했고,
교과 과정과 관계없는 곳은 학술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제목도 물리, 지학 대신 <하늘>, <대지> 등 일상 단어로 정했습니다.
그가 쓴 책은 <초보자를 위한 천문학>, <초보자를 위한 기하학>,
<지리 입문>, <폴 아저씨의 화학> 등 총 61권에 달하며
자연과학 분야 전체를 다뤘습니다.
♥ 시민강좌
나폴레옹 3세가 등극하고, 진보 진영의 뒤루이가
교육부 장관에 오르며 프랑스에 평생 교육 개념이 도입됩니다.
(이 때가 1866년입니다.)
교육목표는 시대 요구에 부합하는 유능한 국민을 양성하는 것,
뒤루이의 요청으로 파브르는 기꺼이 시민강좌를 맡아 강연합니다.
평소 여성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주었던 파브르는
노동자, 농민, 소시민과 여성을 강연에 참석시킵니다.
그의 강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죠.
여성의 권리와 교육에 대한 파브르의 생각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습니다. 여성 해방을 위해 노력했던
존 스튜어트 밀이 가까운 동네에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같이 채집을 다녔으니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겁니다.
어찌보면 파브르의 인생에서 봄과도 같던 시기였지만,
꽃이 피기도 전에 보수 진영의 집중 공격을 받습니다.
교회가 먼저 딴지를 걸었습니다.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죠.
암술과 수술이 만나 수정이 되는 과정을 예로 들며,
여자에게 수정을 가르치는 외설적인 강좌라는 것입니다. ^^
학자들은 정규 코스를 밟지 않은 파브르를 시기했으니,
비정규직의 차별을 당합니다.
당시 특권층은 파브르를 노동자와 농민을 교육시키는,
사회 체제를 무너뜨릴 위험한 인물로 바라보았습니다.
성직자들의 끝없는 공격과 방해로 진보성향의
뒤루이 장관이 물러납니다. 파브르는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 것으로 인해 보복을 당하죠.
파브르가 사는 집주인을 이용해 파브르를 내쫒은 겁니다.
이사 비용조차 없었던 파브르는 존 스트어트 밀에게
3000 프랑을 빌려 오랑주라는 시골 마을로 이사를 합니다.
인세 수입으로 이사 비용을 값아가던 파브르는
사람들의 간섭을 피해 세리냥이라는 깊은 산골로 들어갑니다.
오랑주의 집주인이 집이 잘 안 보인다며 플라타너스 오솔길을
밑둥까지 뭉둑하게 잘라놓는 데 대한 경멸의 표현입니다.
집주인의 대량 살육을 더 이상 보기 싫었다고 곤충기에 썼을만큼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했죠.
세리냥으로 이사한 56세부터 84세까지 30년 가량을
곤충 관찰과 곤충기를 집필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이곳에서 92년의 생애를 마갑합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곤충들아…” 로 시작하는 그의 고백 속에는
사랑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왔던 행복감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면서도, 평생을 괴롭혔던 가난과
살며 느겼던 고난과 설움, 비애가 있습니다.
파브르 곤충기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로,
몇 번을 읽어도 그의 삶을 이 글처럼 잘 드러낸 구절은 없습니다.
파브르는 자연과 교육에 온 몸을 바친 학자이자 교사였습니다.
당시의 박물학 수준에서 벗어나 진정한 학문이 되려면
그들의 습성, 일, 전쟁, 사랑, 사생활과 사회생활까지
연구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왜? 라는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후세 학자들에게 생물 분야에서 실험을
체계적으로 실시했던 최초의 학자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그가 밝혀낸 결과가 아니라
자연과 학문에 대한 그의 열정과 신념이며,
그가 결과를 얻기까지 해 왔던 실험 과정이고,
생명에 대한 그의 사랑입니다.
결과만 보여주는 책으로는 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랑주에서 파브르가 세들어 살던 집입니다.
100년 전 밑둥이 잘렸던 플라타너스가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1980년대에 직은 사진입니다.
